[리뷰:책] 내 옆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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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구절]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산의 길은 성실한 길이다. 어떤 산길이라도 가볍거나 호락호락한 길은 없으며,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무색무취의 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왔는데도 맨송맨송한 상태에 있거나 그 상태로 세상 먼지에 휩쓸려버린다면 그 사람은 산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딴 데 다녀온 것일 것이다.
산은 어렵다. 쉬운 것에 가닿으려면 산은 아니다. 쉬운 인생을 살려는 사람에게 산은 아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우리가 산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쉽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쉽지 않은 것이 우리를 달라지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이 추측은 작게나마 진실이다.
아슬아슬한 사랑도 사랑인데, 사랑은 길이 많아서 그만큼을 헤매야 사랑일 텐데.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두렵다. 비슷한 사람하고의 친밀하고도 편한 분위기에 비하면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속을 여미게 된다. 그럴수록 나와 같은 사람을 찾겠다면서 여러 시험지를 들이대고 점수를 매기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과 중심들을 꺼내놓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참 그렇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살며 혼자만의 시력만큼 살아간다.
... 젊은 주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가 하고 작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바람에 피워놓은 모닥불 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져 오간 데 없고 차곡차곡 주위의 서늘한 어둠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일찍 잠을 청할까 싶어 어르신이 쓰던 것처럼 보이는 이불을 깔았다. 그 자리에 쉬이 눕지 못하고 대신 방문을 열었다. 달빛이 환하게 들이치면서 뭐라 말을 거는 것 같은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내가 젖는다는 것, 술에 취한다는 것은 내가 잠긴다는 것, 술이 깬다는 것은 나에게 도착한다는 것.
비 내리는 날에 음주욕구가 이는 것은 마음이 가려워서다.
아까 뵌 어르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 가져온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얼굴이 타는지도 모르게 앉아 바라보는 것이 그 사람인지, 그 사람과의 좋은 한때인지 알고 싶었지만 어르신이 마냥 하염없이 앉아만 있어서 나도 멀찌감치 나무 그늘 하나를 정해 바라만 보았던 것이다. 그러다 미어졌던 것이다, 가슴이.
자기 인생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갖는 것, 그건 여행이 사람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야.
사람은 원래 약하고 여리고 결핍되게 만들어졌어. 그건 왜 그런가 하면 그 상태로부터 뭐든 하라고, 뭐든 느끼라고 신은 인간을 적당히 만들어놓은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약한 게 싫거나 힘에 부치는 게 싫은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되는 몇몇 순간을 만나는 거지. 그래서 불완전한 자신을 데리고 먼길을 떠나. 그걸 순례라고 치자구. 나에게 순례는, 내가 나를 데리고 간 그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나와 화해하며, 나에게 잘해주는 일이야.
소년의 마음이야 눈을 가리고도 알겠고 소녀도 소년이 싫지 않은 기색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묘한 타이밍에 저리 아름답게 웃을 수는 없어.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소녀를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비틀거린 적 없으며...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물으면 절박하게 군색하게 영감의 무엇과 직감의 무엇과 육감의 무엇을 기다리는 일을 합니다, 라고 말해야겠는데 제정신으로는 그 대답을 못하겠으니 직업적 고충이 참 말이 아니다. ... 한 예술가가 이상히도 그러고 있는 것은 급히 바꿔놓거나 정돈해야 할 세계가 있어서 잠시 파도를 맞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주시길. 그렇다고 '잠시 파도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언제 한번은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는 거예요. 내가 먼저 카페에 도착해서 그 친구를 기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를 흠뻑 맞고 뛰어들어오더라구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 맞히기에도 아까운 사람."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사람을 좋아해야 할까. 지금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 감정 자체를 좋아해야 할까.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 사랑을 통해 인간적인 완성을 이루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명백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은 사람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만들어 사람의 결을 더욱 사람답게 한다.
무엇을 기다렸던가. 봄인데, 봄이라는데 무얼 망설이는가. 미친 듯 홀린 듯 번져야 하지 않겠는가. 봄에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흘렀다. 많이 쓰라려서도 아니고 서러웠던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얼마간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 것이다.
음식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은 왠지는 몰라도 그만큼 자기를 아끼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같다. 스스로를 의젓하게 떠받치고 사는 사람으로도 보이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충분한 기본기를 다진 것처럼도 보여서 남들하고 다른 생활적 시야를 확보하고 살 것 같다.